“그것은 환희의 빛깔이야. 짙은 초록의 등을 가진 은빛 물고기떼. 화살처럼 자유롭게 물 속을 오가는 자유의 떼들, 초록의 등을한 탱탱한 생명체들. 서울에 와서 나는 다시 그들을 만났지. 그들은 소금에 절여져서 시장 좌판에 앉혀져 있었어, 배가 갈라지고 오장육부가 뽑혀져 나가고. 그들은 생각할 거야. 시장의 좌판에 누워서, 나는 어쩌다 푸른 바다를 떠나서 이렇게 소금에 절여져 있을까 하고. 하지만 석쇠에 구워 때쯤 그들은 생각할지도 모르지. 나는 왜 한때 그 바닷속을, 대체 뭐하러 그렇게 힘들게 헤엄쳐 다녔을까 하고.”
처음엔 모든 걸 다 잃은 이들의 연애 소설인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이 책은 좀 더 큰 무언가를 담고 있었다. 명우와 은림의 사랑을 통해 시대와 자유와 운동을 했던 이들을 기억케하는 이 책은 고등어라는 제목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지나버린 시간에 대한 그리움에 관한 소설이다.
그들이 사랑했던 때는 운동기로 사랑을 하는 것조차 사치로 여겨지던 때였다. 그때 유부녀와의 하룻밤을 보내고 도망가기로 약속 했던 명우는 평생을 은림에 대한 잊지 못한 추억과 후회로 지세운다. 그런 어느날 그녀가 나타났고 은림은 사랑에 대한 기억뿐만 아니라 이제는 사랑해도 즐겨도 즐겁게 웃어도 죄가 아닌 시대에 그들이 사랑했던 시대에 대한 기억의 안개를 불러온다.
그때 그들은 자신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운동만이 세상에 저항하고 그들이 하는 그 희생으로 얼마 후엔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맞고 끌려가고 정신병원에 실려 가기도 하고 그들의 청춘을 잃어버렸지만... 그 믿음 덕분에 바다 속의 고등어와 같이 빛났다. 하지만 십년이 지났고 그들이 했던 모든 것은 잊혀졌다. 세상은 그저 세상그대로이고 그들의 운동의 결과 남은 것은 잃어버린 청춘과 정신병에 걸린 동료, 그땐 무엇을 했나 하는 후회 뿐 이다.
그들의 그 느낌에 가슴이 통하는 듯한 연민과 동정을 느꼈다. 나또한 그리고 다른 모든 이들 또한 그런 후회감과 과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고 내가 하는 이것이 뭔가 큰 변화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었지만 세상은 거대한 바위처럼 나를 덜 익은 달걀과 같이 한 치도 움직이지도 않은 채 부서 버리고 남겨진 건 껍질도 잃어버린 주루룩 흐르는 국물뿐인 초라한 모습... 그때에 대한 후회와 젊은 치기라고 치부해버리고 싶은 순간 순간 떠오르는 유혹들...
하지만 명우와 은림은 어쩌면 그때가 가장 행복했을지 모른다. 결국은 지금 밥상위에 올라와있는 눈빠진 초라한 고등어이나... 그들이 바닷가에서 온 힘을 다해 돌아다녔던 것은 쓸모없이 힘을 낭비했던 과거의 아픈 기억이 아닌 그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고 자유로웠던 기억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밥상위의 고등어이나 그들이 이곳에서 그들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남기고 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바닷가를 헤엄친 자유로웠던 한 물고기로써 지나친 흔적들이 아닐까.... 바다 속에서 물의 흔적은 몇 초면 사라져버리지만 세상의 그 누군가에게는 죽을 때 까지 지워지지 않을 영원한 발자국이기에 그것은 아름답다.
명우와 은림의 과거는 비록 아무 것도 남긴 것이 없게 보이나 그들이 했던 그들만 아는 그 발자국은 기억 속에 남아 세상을 변화시키는 나비의 날개 짓이다. 고등어는 밥상위에 눕혀있기 위해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바다 속에서 자유롭게 여행하기 위해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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